박정연 유한대학교 보건복지학과 교수
박정연 유한대학교 보건복지학과 교수

1970년대 영국에서 사회적 모델이 등장했던 배경에는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 가치를 입증받고자 했던 수많은 장애인과 그 이해관계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제정된 각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UN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에 대한 기존 관점과 물리적인 환경을 장애친화적인 형태로 급속하게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장애운동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던 사회적 모델이 장애억압의 주체로 사회, 그 중에서도 특히 장애인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한했던 사회의 물리적인 환경과 이를 규정하는 각종 제도, 정책을 지목했기 때문이다(Shakespeare, 2006). 이러한 노력 결과, 과거 장애인의 다양한 활동가능성을 제한했던 수많은 물리적 환경과 제도, 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화했으며, 이는 곧 장애인의 권리의식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와 같이 장애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긍정적 변화와 장애인의 권리의식 향상은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장애로 인해 고립되고 배제된 삶을 살아왔던 장애인에게 급속한 물리적 공간의 확장과 권리의식 향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간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이해 부족으로 다양한 형태의 갈등과 차별을 유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갈등과 차별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피해자가 오랜 시간 고립되고 배제된 삶을 살아왔던 장애인이라면 이들이 겪는 심리적·정서적 상처는 결코 가볍게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상처는 피해자가 직접 드러내지 않는 한 그 존재여부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또 이 같은 상처가 쌓이면 장애인들은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다시금 사회적으로 고립 또는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과거의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참여 범위의 확대 및 권리의식의 향상에 따라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인 미세한 차별의 개념을 간략히 살펴본 후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장애인에 대한 미세한 차별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세한 차별이란?

'미세한 차별'이란 특정 범주의 인간에 대해 그들의 인종이나 민족성(ethnicity), 문화적 특성, 성적(性的) 지향 등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때로는 불필요하거나 미묘하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의미한다(Davis, 1989; Dyson, 1990; Solorzano, 1998; Sue et al., 2007).

당초 미세한 차별은 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경험하는 심리·정서적 형태의 차별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이후 그 대상이 인종에서 여성(Sue et al., 2010), 아동(Dyson, 1990), 장애인(Gonzales et al., 2015)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 서서히 확대되면서 그 적용범위와 차별의 양상 또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미세한 차별은 종종 비가시적인 형태로 피해자에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상당 기간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Wong et al., 2014), 또한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욱이 미세한 차별은 주로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그리고 특히 피해자를 통해 그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장애인에 대한 미세한 차별 사례

미세한 차별의 유형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비가시적인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를 통해 그것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실태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나타났던 미세한 차별의 사례를 소개한다.

「일반 기업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근무했던 A씨는 휠체어 지체장애인이다. A씨는 퇴근 후 같은 부서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 늘 함께 하고 싶었으나, 회식장소가 주로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라 참석할 수 없었다. 어렵게 합석한다 하더라도 비장애인 동료의 도움을 받아야하기에 그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A씨는 자신의 건강문제 등을 핑계로 회식에 자주 불참하였다고 한다. 이런 자신에 대해 같은 부서의 일부 비장애인 동료들은 “A씨는 [장애 때문에] 회식을 자유롭게 빠질 수 있어서 좋겠다. 우리는 회식에 빠지고 싶어도 못 빠지는데...”라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용기를 내어 직장 상사에게 자신도 회식에 참석이 가능하도록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장소를 선정해줄 것을 건의하였다. 이후, A씨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장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회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매번 똑같은 식당에서 하는 회식은 또 다른 비장애인 동료들의 불평과 불만을 사게 됐다. 이들은 결국 사내에서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 은밀하게 A씨를 따돌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비장애인 동료들의 이 같은 태도를 명백한 장애차별로 인식한 A씨는 해당 사안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였고, 이는 장애차별로 인정되어 해당 기업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조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 이후 A씨는 직장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다. 먼저 직장 동료들은 사무실내에서 의도적으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언행을 한 후 A씨에게 수시로 “아, 이거 이렇게 하면 장애인 차별하는 거죠? 그렇죠? 다른 분들도 잘 들으세요. 장애인들한테 이렇게 하면 장애인 차별하는 겁니다. 그러면 저처럼 국가인권위원회에 다녀와야 해요.”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 직장에서는 그동안 A씨의 장애를 고려하여 암묵적으로 적용해주던 유연근무제 및 비공식 월차제도 등을 모두 폐지하고,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근로계약서 상의 근로기준을 명확히 준수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대하는 동료들의 이 같은 태도와 회사의 조치로 인해 A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필자의 설명임).」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인에 대한 미세한 차별이 발생하는 원인은 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인한 갈등 혹은 피해의식 등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조치 이후 장애차별 방식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교묘한 형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다른 나라와 달리,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법률로 금지(prohibition)하고, 차별행위에 대한 가해자의 입증책임제도―가해자 자신의 행위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제도―를 채택함으로 인해 나타난 현상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금까지 미세한 차별의 개념과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미세한 차별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형태의 차별은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비가시적인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를 통해서만 그 실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차별의 진위 여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차별에 대해 미국 심리학자인 Harris (2008)는 ‘Racial microaggression? How do you know?’라는 글에서 미묘한 차별의 진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는 다시 말해, 미묘한 차별로 간주되는 행위가 실제로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차별행위인지 아니면 그들의 피해의식에 근거한 편집증적 사고인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Harris의 지적은 구조와 행위, 실재와 구성 등과 같은 사회과학의 전통적인 인식론적 이분법, 즉 주관주의(subjectivism)와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일견 타당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차별의 진위 여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세한 형태의 차별이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간에 피해자들의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그들의 심리적·정신적 건강상태 등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Wong et al., 2014). 더욱이 오랜 시간 장애로 인해 사회 내에서 고립되고 배제된 삶을 살아왔던, 그래서 제한된 인간관계만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장애인들에게 법적으로도 차별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미세한 형태의 차별은 결과적으로 장애인들이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 다시금 사회 내에서 고립 또는 배제될 수 있다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미세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의 회복과 유사 사례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천 현장과 유관기관, 그리고 학계의 적극적인 연계를 통해 피해자의 심리·정서적 측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더불어, 차별의 미세화 과정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Davis, P. C. 1989. “Law as microaggression.” The Yale Law Journal, 98 (8): 1559-1577. URL: http://www.jstor.org/stable/796605

Dyson, J. L. 1990. “The effect of family violence on children’s academic performance and behavior.” Journal of the National Medical Association, 82 (1): 17-22. URL: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625936

Gonzales, L., K. C. Davidoff, K. L. Nadal, and T. P. Yanos. 2015. “Microaggressions experienced by persons with mental illnesses: An exploratory study.” Psychiatric Rehabilitation Journal, 38 (3): 234-241. URL: http://dx.doi.org/10.1037/prj0000096

Harris, R. S. 2008. “Racial microaggression? How do you know?” American Psychologist, 63 (4): 275-276. URL: http://dx.doi.org/10.1037/0003-066X.63.4.275

Shakespeare, T. 2006. Disability rights and wrongs. UK: Routledge.

Solorzano, D. 1998. “Critical race theory, race and gender microaggressions, and the experience of Chicana and Chicano scholars.” International Journal of Qualitative Studies in Education, 11 (1): 121-136. doi:10.1080/095183998236926

Sue, D. W. 2010. Mircroaggressions in everyday life: Race, gender, and sexual orientation. New Jersey, US: Wiley.

Sue, D. W., C. M. Capodilupo, G. C. Torino, J. M. Bucceri, A. B. Holder, K. L. Nadal, and M. Esquilin. 2007. “Racial microaggression in everyday life: Implications for clinical practice.” American Psychologist, 62 (4): 271-286. doi:10.1037/0003-066X.62.4.271

Wong, G., A. O. Derthick, E. R. David, A. Saw, and S. Okazaki. 2014. “The what, the why, and the how: A review of racial microaggressions research in psychology.” Race and Social Problems, 6 (2): 181-200. doi:10.1007/s12552-013-91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