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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올렸던 봉대산, 정상에 서니 탁 트인 조망 ‘이름값’
  • 등록일

    2024.09.13 09:32:44

  • 조회수

    48

  • 시설종류

    지역주민

고양 마을숲 생태탐사 (4) 봉대산

고속도로·도시개발로 팔다리 모두 잘려
나무들 ‘겨울눈’ 달고 고난의 계절 대비
날머리 울창한 생태교란식물 마음 착잡
먹이식물 풍부, 곤충 개체 수 꽤 많아
인접한 창릉천 다양한 조류·포유류 서식

봉수대가 설치되었던 봉대산 정상은 시야가 탁 트여 주변 산들을 고루 조망할 수 있다.

2020년 11월 개통된 서울문산고속도로는 고양지역에 되돌릴 수 없는 생태환경 훼손을 초래했다.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에서 파주시 문산읍 내포리를 잇는 서울문산고속도로는 총연장 35.2㎞ 가운데 62%인 22㎞ 구간이 고양을 통과하면서 중요한 녹지축을 망가뜨리고 마을을 단절시키는 재앙을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고양시민들이 즐겨 찾는 마을 숲인 강매동 봉대산과 성라산 국사봉, 견달산의 녹지축이 파괴되었고 대덕동, 성사동 수역이마을, 원신동 등 전통 마을들은 두 동강 났다. 종일 이어지는 소음과 분진 피해는 두고두고 감내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서울문산고속도로가 봉대산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다.

옛 산줄기 모습 찾을 수 없어  
지난달 31일 아침 고양시민 25명이 고양신문 주최 마을숲 생태조사에 참여하기 위해 경의중앙선 강매역에 모였다. 목적지인 봉대산 탐방로 쪽으로 연결되는 강매역 2번 출구가 폐쇄된 바람에 탐방객들은 역사를 우회하여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고가도로를 한참동안 걸어서야 탐방로 들머리에 설 수 있었다. 
탐방로 입구에는 원당역에서 행주산성까지 11.9㎞를 잇는 ‘행주누리길’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행주누리길은 성라산, 봉대산, 덕양산 등 주민 발길이 잦은 숲길과 성사천, 창릉천 물길을 이은 길로 고양누리길 4코스로 지정되어 있다. 
봉대산은 해발 96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초입 구간은 제법 가파르다. 마을 공원에 마실 가는 기분으로 참가한 일부 탐방객들이 숨을 몰아쉬며 힘들어했다. 하지만 이 구간만 지나면 남녀노소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완만한 숲길이 이어진다.

정상에 조선 전기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는 봉수대가 있어 봉대산으로 불렸고, 다른 이름으로는 창릉천에 있었던 큰 포구인 해포의 이름을 따서 ‘해포봉수’라고 불렸다.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통신수단인데, 해포봉수는 일산의 고봉봉수를 받아 서울의 모악봉수로 전달했다고 한다. 현재 봉수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산 정상의 팔각정 주변에 기왓조각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봉대산 정상에 서면 북한산, 고봉산, 모악산, 관악산, 덕양산과 한강 건너 계양산까지 꽤 넓은 지역의 조망이 가능하다. 지금은 주변 아파트단지에 가려져 고양시민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펼쳐지는 전망을 보면 왜 이곳이 봉대산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남동쪽으로는 창릉천이 흘러 전략적, 지형적으로 중요한 산이었지만 지금은 각종 도시개발과 서울문산고속도로의 관통으로 팔다리가 모두 잘리나가 자연스러운 옛 산줄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숲해설가 임철호씨가 봉대산 숲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숲해설가 김경숙씨가 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자생종보다 인공조림 식물 많아
봉대산은 산의 초입에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어 자연림이 아니라 인공으로 조림한 숲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한다. 예상대로 산 중간쯤엔 대표적인 조림수종인 아까시나무가 10여 그루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나 자생종보다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재배식물, 귀화식물, 외래화 우려 식물로 등재된 종들이 많았다. 
지난달 8일과 31일 두 차례에 걸친 봉대산 생태조사에서 식물은 총 46과 79종이 관찰되었다. 봉대산은 교목들이 큰 키를 뽐내고 서 있는 울창한 숲이라기보다는 키 작은 관목들이 눈에 많이 띄는 밝은 숲이다. 교목으로는 팥배나무와 벚나무의 개체 수가 많은 편이다. 꽃이 배꽃과 닮았고 열매는 팥처럼 작아 ‘팥배나무’라 불리는 이 나무는 1㎝가량 크기의 열매를 달고 겨울을 나는데 겨울철 먹을 것이 귀한 새들에게 먹이가 되어준다. 
고양시의 다른 마을 숲처럼 봉대산에도 신갈나무를 비롯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등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류가 많았다. 참나무류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은 많지 않고 새로 자연 발아한 어린 참나무들이 주변에 어우러져 있었다. 나무들은 겨울에 대비해 가지 끝에 제각각 모양의 겨울눈을 달고 있었는데, 고난의 계절인 겨울이 지나면 싹을 틔울 자신의 미래를 한창 좋을 때 미리 준비한 나무들의 생존전략이다. “나무와 풀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가 겨울눈”이라고 숲해설가 임철호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수피의 흰 얼룩무늬가 매력적인 물푸레나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어린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물들어 수청목(水靑木)이라고도 불리는 물푸레나무는 목재가 질기고 탄력이 좋아 예전에 곤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매를 맞은 죄인들의 몸이 너무 상해서 이를 가엾게 여긴 임금이 곤장의 재료를 다른 나무로 바꾸게 했더니 죄인들이 이실직고를 안해 다시 물푸레나무로 바꾸게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난달 31일 봉대산 정상 팔각정 앞에서 마을숲 탐방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달 31일 봉대산 정상 팔각정 앞에서 마을숲 탐방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풀잎을 따서 먹어보는 마을숲 탐방객들.
풀잎을 따서 먹어보는 마을숲 탐방객들.

꿀이 많아 밀원식물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수나무가 계속 길 안내를 하는 가운데, 잎이 세 장씩 나고 자주색 조그만 꽃을 피운 싸리나무, 참싸리, 조록싸리도 고루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때가 일러 열매가 다 익지 않은 개암나무도 자주 눈에 띈다.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개암나무는 열매가 고소하고 영양가가 풍부해 예전에는 간식으로 즐겼고 밤 대신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다는데 요즘 사람들은 잘 먹지 않는다. 깨물면 ‘딱’하고 제법 큰소리가 나서 도깨비가 이 소리에 혼비백산해 방망이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열매가 바로 이 개암나무다.
덩굴 식물은 아주 풍부해 조금 있으면 동그란 열매가 빨갛게 익어갈 청미래덩굴, 검게 익어갈 청가시덩굴, 밀나물, 선밀나물을 비롯해 댕댕이덩굴, 노박덩굴, 담쟁이덩굴, 인동덩굴 등이 실하게 자라지 못한 작은키나무들을 감고 올라가며 광합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상 팔각정 부근의 미국자리공은 새빨간 줄기와 열매로 시선을 끌었고 향기가 좋은 자주색 칡꽃도 눈길을 붙든다. 창릉천 쪽으로 하산하는 날머리에는 가시박과 환삼덩굴, 단풍잎돼지풀 등의 생태 교란 식물들이 위용을 떨치고 있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강매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애기나팔꽃과 별나팔꽃이 귀여운 얼굴로 배웅해 주었는데, 따지고 보면 이들 역시 토종식물이 아니라 열대 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참나무에 앉아있는 붉은매미나방.
참나무에 앉아있는 붉은매미나방.

남의 밥상 건들지 않는 곤충
봉대산에서 곤충은 32과 51종이 관찰되었다. 떨기나무 그늘 밑에 곤충들이 숨을 공간이 넉넉해서인지 자신이 정해놓고 먹는 먹이식물이 풍부해서인지 관찰된 곤충의 종수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환삼덩굴이 많은 곳엔 네발나비들이 나풀나풀 날았고 어딘가 숨어 있던 메뚜기과의 방아깨비, 팥중이, 섬서구메뚜기, 등검은메뚜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리저리 튀었다. 허리를 위로 한껏 말아 올린 넓적배사마귀는 개체 수가 매우 많았으며 좀사마귀, 왕사마귀까지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콩풍뎅이, 등얼룩풍뎅이 등의 풍뎅이류와 잎벌레 종류도 계속 눈에 띄었다. 아까시나무 잎에 달라붙은 콩박각시 애벌레와 배얼룩재주나방은 어른 손가락보다 큰 크기와 존재감으로 탐방길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먹이사슬에서 곤충은 식물과 동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데, 많은 곤충이 식물을 먹이로 삼고 자신은 포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크기가 작아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자연에서 도태된 생물을 분해해 자연의 거름으로 되돌려주는 등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곤충이다. 생태 공부 모임 ‘도란도반’ 대표 김경숙씨의 곤충 예찬론이 이어진다. “곤충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생물이지만 각자 먹이식물이 정해져 남의 밥상은 절대 건들지 않아요. 곤충이 100만 종 넘게 번성한 비결이 이 같은 지혜 때문이지 않을까요.”

봉대산과 접한 창릉천에서 서식하는 백로류.
지난달 8일 봉대산 정상에서 새호리기에 쫓긴 물까치가 경계음을 내고 있다.

겨울철 더 많은 조류 관찰 기대
지난달 8일 오전 10시, 봉대산 정상부의 탁 트인 개활지 상공에 멸종위기야생동물 2급인 새호리기가 나타났다. 물까치 어린 새 여러 마리가 새호리기에 쫓기듯 도망가고, 어미 새들은 날카로운 경계음을 내며 저항하고 있었다. 
8일과 31일 두 차례 봉대산 조사에서 조류는 14과 23종이 관찰되었다. 봉대산만 조사한 8일과 달리 창릉천을 거쳐 원점 회귀하는 31일 조사에서는 백로류와 흰뺨검둥오리, 깝작도요 등 물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봉대산과 접해있는 창릉천은 자전거 도로가 나 있지만, 이용객이 많지 않고 하천 가장자리에 식물이 뒤덮고 있어 새들이 방해받지 않고 살기에 좋아 보였다. 가장자리의 식물들 탓에 하천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어떤 종들이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중간중간에 백로들이 여유롭게 먹이를 사냥하고 있었으며, 깝작도요가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천가에 번성한 생태 교란 식물도 조류에게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였다. 단풍잎돼지풀은 되새과 조류의 먹이가 되어주고, 환삼덩굴은 멧새과, 되새과 등 다양한 조류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만큼 겨울에는 더 많은 조류를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특이한 점으로는 철도 구조물이나 전봇대에 지은 까치둥지들이다. 새호리기가 인공구조물 위에 지은 까치둥지 쪽으로 곧장 날아가는 것이 여러 차례 관찰된 만큼, 새호리기가 이 부근 까치둥지에서 번식했을 가능성과, 내년에 이곳을 찾아와 번식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한편, 봉대산에서는 두더지 굴을 제외한 포유류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요 원인은 고양의 다른 작은 숲들과 마찬가지로 생태 축이 단절된 탓으로 추정된다. 봉대산과 접한 창릉천 주변에서는 고라니 발자국들이 관찰되었다. 창릉천 하류에서는 야생동물 생태전문가 이상규 씨가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조사한 결과 수달과 삵, 너구리, 고라니 등 다양한 포유류가 관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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