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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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복지뉴스
초고령 사회 진입이 현실이 된 지금, ‘돌봄’은 더 이상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와 인구구조 변화, 그리고 건강보험재정 고갈 위기 속에서 정부는 뒤늦게 통합돌봄 정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나 현장에선 여전히 공백이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철학으로’ 돌봄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다. 고양시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로, 생협 활동가들이 모여 설립한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 있다. 생명의 가치를 중심에 둔 한살림 철학을 기반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돌봄을 실현하겠다는 목표 아래 새로운 지역 돌봄을 실험 중이다.
친환경 먹거리 넘어 생명가치 돌봄으로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2023년 9월 창립됐다. ‘한살림’이라는 이름에서 유추되듯, 이 조합의 뿌리는 20년 넘게 지역에서 활동해 온 한살림 고양파주 생협이다. 생협 활동을 해오던 조합원들이 노인 돌봄의 필요성과 한살림의 철학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출발점이다. 생협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유현실 이사장을 비롯해 6인의 발기인이 중심이 됐다.
“우리는 생협에서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를 통해 생명을 지키는 활동을 해왔어요. 그 가치를 지역 돌봄에도 적용해 보자는 데 공감이 있었죠.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돌봄, 어르신을 약자가 아닌 존엄한 시민으로 존대하는 돌봄을 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유 이사장은 2019년 생협 내에서 ‘1000원 돌봄기금’을 시작하며 이미 지역 돌봄 실험을 준비해왔다. 이 기금은 조합원들이 한 달에 1000원씩 자발적으로 모은 돈으로, 조합원들이 직접 기획한 지역 내 청소년·노인·다문화 대상 돌봄 공모사업을 추진하는 데 사용됐다. 5년 동안 33개 팀이 참여해 약 4000만원 규모의 기금으로 다양한 민간 돌봄 실험을 수행했다.
2023년 9월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 모습.[사진제공=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
방문요양 사업부터 시작, 주야간 보호센터 준비 중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설립된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2024년 1월 보건복지부 정식 인가를 받아 현재 고양시에서 공식적으로 재가방문 요양서비스 사업을 운영 중이다. 요양보호사들이 이용자의 집을 방문해 3시간씩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고양시 내 370여 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포화상태에 있는 시장이지만, 그 속에서도 한살림 돌봄센터는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법적으로 의무화된 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아요. 우리 조합은 매월 요양보호사들과 원 회의를 열고, 새로운 지침을 공유하며 현장 피드백을 반영해요. 보호사도, 이용자도 서로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조합의 다음 목표는 ‘주야간 보호센터’ 설립이다. 어르신이 낮 동안 시설에서 돌봄 및 재활서비스를 받고, 저녁엔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유 이사장은 “요양원 시설은 24시간 내내 입소하는 방식이다 보니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어렵다”며 “되도록이면 어르신들이 자택에서 돌봄을 받으며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다운 돌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주야간센터 설립을 위해 공간을 물색 중이며 이르면 7월경에 문을 열 계획이다.
시장 논리 아닌 지역 기반의 돌봄 모델 실현 목표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과 ‘활동’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국가지원사업뿐 아니라, 국가지원대상이 아니더라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자발적 활동도 병행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돌봄노동자들의 행복이 돌봄이용자의 행복과도 이어질 수 있는 ‘서로돌봄’의 가치를 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수익을 우선하는 법인이 아닙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말그대로 공공성을 가진 법인체이기 때문에 지역에 꼭 필요한 돌봄을 실현하고자 해요. 우리 조합이 있는 것만으로도 지역 어르신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돌봄의 질과 철학을 유지하려 합니다.”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최근 경기도 사회적경제센터가 지원하는 ‘고도화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사업을 통해 주야간센터 개소 및 돌봄서비스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협동조합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지원 중 하나는 한 사람 몫의 인건비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인건비가 확보되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죠.” 유 이사장은 공모사업 의존을 줄여나가면서도, 필요한 시기에 적극적으로 제도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전략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2024년 6월 돌봄센터 개소식. [사진제공=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
통합돌봄 정책과 사회적경제의 접점 찾아야
현재 정부는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통합돌봄 계획의 주체가 되어야할 지자체들은 대부분 아직 실행 기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고양시도 마찬가지다.
“제도적 보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우선 지자체에 흩어져 있는 돌봄관련 업무를 주관할 ‘통합돌봄센터’ 설립과 주무부서 및 담당 공무원 등을 요구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건 현재 장애인과 노인 위주로만 설계된 ‘통합돌봄’정책에 보다 다양한 대상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겠죠.”
한살림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통합돌봄과 사회적경제가 만나야 하는 지점에서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최근 고양시 이종 협동조합 간 네트워크 구축과 통합돌봄 포럼 준비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돌봄 외에도 교육,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협동조합이 연대해 통합돌봄 기반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유현실 이사장은 “서로의 사업을 깊이 이해하고 연대하는 것이 출발점”이라며 “지역 안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학습과 실험이 동시에 진행돼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맞은 2025년. 한살림 돌봄 사회적협동조합이 보여주는 ‘생활 속 돌봄’의 실험이 고양시와 한국 사회의 돌봄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유 이사장은 “사회적경제가 이윤보다는 공공의 가치를 지향한다면, 돌봄 분야는 그 실현의 최전선”이라며 “이윤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돌봄이 고양시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많은 시민과 조합원들이 함께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